모처럼 날씨가 굉장히 맑아 설레는 기분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오늘 같은 날씨면 530km 거리의 시드니까지도 즐겁게 운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며칠 전까지 캠핑카를 타고 다닌지라 SUV차량 소음은 소음으로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조용하고 승차감도 좋았다.
1시간 정도 달려 Arakoon national park Trial Bay Gaol에 도착을 했다. 이곳은 1886년에 문을 열고 감옥으로 쓰이던 곳으로 지금은 국가 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는 호주의 역사적인 명소이다. 계획은 결국 실패했지만 그곳에 수용된 죄수들은 당초 시드니와 브리즈번 사이의 항구를 만들기 위한 방파제의 건설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교도소는 이후 세계 제1차 대전 동안에는 적으로 생각되는 독일계 사람들을 위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뷰가 좋은 곳에 교도소라니.. 수용된 사람들의 마음을 교화시키는데 필요한 환경이라고 생각했을까?
사실 우리가 이곳에 들른 이유는 명소 방문뿐만 아니라 캥거루를 보기 위한 것도 있다. 이곳 주위로는 야생 캥거루를 쉽게 만날 수 있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꼭 야생캥거루를 보여주고 싶었다. 입구에 있는 캥거루를 만났을 때 취해야 하는 행동에 대해 적어놓은 안내문은 야생 캥거루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켰다.
막상 들어가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던 캥거루를 단 한 마리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금 실망하고 교도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따로 있는지 어느샌가 나타난 캥거루들이 잔디밭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야생 캥거루라 가까이 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줄 맞춰 동시에 점프하는 모습에 아이들이 아주 즐거워했고 나는 마침내 숙제를 완료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한 관광지는 아니었기에 짧은 방문을 마무리하고 다음 목적지인 포트맥쿼리로 향했다. 콥스하버부터 Trial Bay Goal를 찍고 포트맥쿼리에 이르는 동안은 맑은 날씨와 확 트인 이국적인 풍경에 오랜만에 드라이브의 참맛을 느끼며 운전했다. 브리즈번을 떠나오면서 느꼈던 마치 한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한 익숙함에서 느낀 실망감을 커버할 만큼 압도적으로 좋았다. 옆에 앉은 아내도 풍경을 눈으로만 보기에 아깝다며 폰으로 연신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댔고, 아이들도 창밖으로 보이는 소와 말 떼들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포트맥쿼리에서는 일단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케언즈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펠리컨 구경을 하고, 보트들이 늘어선 해안가를 가볍게 산책했다. 시드니까지 가려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 맑은 날의 호주는 사람을 느긋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상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시간개념을 잃은 우리는 유명하다는 Blue Cow에서 젤라토까지 먹고 나서야 또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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